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량/역사 재현 (문단 편집) ==== 개봉 전 ==== [[파일:external/cdn.warisboring.com/Roaring.png]]예고편에서 등장한 선상 백병전 장면으로부터 논란이 시작되었다. 주된 쟁점은 난중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대장선의 피해는 전사자 2명, 부상자 3명으로 나와있다는 것으로 이는 예고편의 장면처럼 처절한 백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예고편의 백병전 장면이 영화에 등장하면서 논란이 심화되었다.[* 실제 역사속에서도 근접전에서는 일본군이 강해 이순신도 왠만하면 적에게 근접전을 허용하지 않고, 대포로 사격 및 화살로 적을 부수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노량해전만 해도 당시에 이순신이 전사한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이순신이 적진에 포위된 진린의 배를 구출하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고 자신도 그 눈 먼 총알에 맞아 전사한 것이다. 당시의 조선은 중기로 오자마자 중기병과 근접전에 쓰는 무구에 대해 천외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이런 사태가 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탄금대 전투]] 당시에도 기병이 전부 궁기병에 국가에서도 근접전으로 하는 칼싸움과 창보다는 궁술을 중점으로 합격시켰는데 이로 인해서 조선은 일본군에게 근접전을 허용해 버리면 대책이 없는 병사들이 되었다. ~~그래서 이순신이 바다에서 선전할 무렵에 지상군들은 고전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